Everyday
"잘 나가는 사람일수록 고독하다"
junday
2004. 8. 26. 22:39
출처 - 조선일보
유명인들 외로움 커...있는그대로 모습 보이는 친구 있어야
유명해지고 싶은가? 그러면 고독(孤獨)에 대한 각별한 준비가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는 유명인들 중에는 자살, 마약 복용 등 사회적 일탈행위로 물의를 빚는 경우가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명성ㆍ인기 뒤에 숨어 있는 고독감을 견디지 못해 국민과 팬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것이다.
흔히 목격할 수 있는 것이 연예인의 일탈행위. 연예인의 마약 복용은 우리 사회에서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일상적인 사건이 되었다. 이밖에도 음주 후 폭력ㆍ교통사고 등으로 매스콤을 타는 연예인이 종종 나타난다. 지난 4월1일 홍콩 배우 장국영(張國榮)이 투신자살 했을 때에도 심한 고독감이 자살의 한 원인이 아니었겠느냐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같은 현상은 스포츠 스타, 문화ㆍ예술인 등 인기를 먹고 사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성격이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고독감에서 자유롭지 못하기는 정치인들도 마찬가지. 최고 권력에 올랐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절대적 고독감을 토로한다.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여러차례 “대통령 자리는 외롭고 고독한 자리”라고 했고 다른 대통령들도 비슷한 말들을 했다. 미국의 한 대통령은 “백악관, 그 곳은 세계에서 가장 고독한 장소”라고 술회했다.
굳이 대통령이 아니더라고 권력의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도 비슷한 현상을 보이는 수가 있다. 마약 복용으로 수차례 법정과 교도소를 들락거린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의 아들 지만(44)씨는 한때 검찰조사에서 “고독의 시간이 너무 길었다”고 말했다. 그는 세상이 자신을 ‘인간 박지만’으로 보지 않고 ‘박 대통령의 아들’로 보는 것에 대해 “잊혀진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정신과 의사들은 “정치인ㆍ연예인들 뿐 아니라 대기업 회장, 전문직 종사자 등 유명세를 타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의 고독감에 노출돼 있다”고 말한다.
유명인의 고독감에 대해 정신과 의사들은 다양한 견해를 제시한다. 먼저 거론되는 것은 정체성의 상실. 포천중문의대 분당차병원 이상혁(정신과) 교수는 “유명인은 ‘진정한 자신’을 내세우기보다 대중이 기대하는 ‘포장된 자신’을 보여 주어야 인기와 명성을 유지할 수 있다. 이같은 괴리감, 인간소외 현상이 고독감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사람은 대인관계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 자신을 지지해 주는 사람들을 얻는다. 그런데 유명인은 포장된 자신만을 보여야 하기 때문에 진정한 대인관계를 형성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미국 영화배우 마를린 몬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며 숱한 염문을 뿌렸지만 정작 세상에 자신을 이용하려는 사람들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깊은 고독감을 느끼다가 우울증에 빠져 숨졌다. 진정한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고 어느 누구와도 진실한 대화를 할 수 없을 때 사람은 고독에 빠진다는 것이다.
“비슷한 사람과 있어야 외롭지 않아”
성균관대 의대 삼성서울병원 이동수(정신과) 교수는 “고독감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다고 해서 사라지거나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다. 외로움은 자신과의 합일화가 됐을 때 극복할 수 있다. 또 자신과 비슷한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방적인 노출도 고독감의 한 원인으로 지적된다. 그룹 ‘동물원’ 멤버로 연예계 생활을 한 적이 있는 정신과 의사 김창기(서울 서초동 김창기신경정신과의원) 원장는 “한 쪽은 상대에 대해 매우 잘 알지만 상대는 그 한쪽을 잘 모를 때의 인간관계는 유명인에게 인기와 돈을 가져다 주지만 심리적 만족감과 안정감은 주지 못한다. 내 경우에도 내 노래에 대한 찬사는 내 자긍심을 키워주는 데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진심으로 나를 사랑해 주는 가족과 친구들이 내 자긍심을 지켜 주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유명인의 고독감은 일반인이 느끼는 고독감과는 좀 다르다고 한다. 일반인은 자기 주변에 사람이 없어 홀로 됐을 때 외로움을 느끼지만, 유명인은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이 많지만 의미있는 인간관계를 맺지 못해 ‘군중 속의 고독’을 느낀다.
성균관대 의대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신동원 교수는 “유명인의 고독감에는 일반적인 외로움 외에 ‘내가 잘 나서 그런 걸 뭐’ 하는 우월감, ‘사람들은 왜 날 내버려두지 않나’ 하는 피해의식, ‘사람들이 언제 내 실체를 알고 떠날지 몰라’ 하는 불안감 등이 섞여 있다”고 말했다.
유명인은 특히 언제 고독감을 많이 느낄까. 김창기 원장은 “내 경험에 비춰볼 때 연예인은 유명세가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할 때 고독감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가수 현진영은 인기하락과 함께 자신을 불러주는 곳이 없어서 마약을 계속하게 됐다고 했으며 심신 역시 무대에서 멀어진 후 대마초로 구속됐다.
가수 백지영은 ‘몰래 카메라’ 사건으로 일반 무대가 아닌 밤무대를 전전하면서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다닐 때를 생각하며 “과거에는 자살하는 사람들을 비난했는데 ‘이렇게 하다가 죽을 수 있구나’라는 절대고독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관중의 환호가 끝나고 혼자 남겨졌을 때의 고독감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콘서트라는 큰 무대에서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는 시간을 갖는 가수들의 경우에 더 그렇다. 즉 무대 위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불사르고 난 후 관객들이 떠나면 빈 무대에 홀로 앉아 허탈함과 고독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창작과정에서의 고독과 공연 후의 허탈감으로 인해 수많은 가수들이 마약의 길로 이끌렸던 것도 이에 대한 방증이라고 하겠다.
가수 신해철은 “엄청난 열기를 느낄 수 있는 무대 공연을 마치고 대기실로 내려오면 혼자라는 사실이 너무나 힘든 짐이 된다”면서 “연습 과정에서도 비슷한 고독을 느낀다”고 말했다.
또 대마초 사건으로 구속된 적이 있는 전인권은 “관객과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무대를 사랑한다. 한국에서는 불법이라서 그렇지 무대 밖에서의 고독을 잠재우기 위해 대마초를 다시 하고 싶은 생각도 있다”고 털어 놓았다. 미국의 경우 성공적인 공연 직후 호텔방에서 자살한 연예인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신동원 교수는 “무대 공연과 무관한 유명인의 경우 가장 평범하고 인간적인 감정(기쁨, 고통, 고민, 사랑 등)에 대해 대중들이 인정하지 않고 거부할 때, 그래서 이런 감정들을 감추고 대중이 기대하는 ‘포장된 행동’을 해야 할 때에 고독감이 크다”고 말했다.
정체성 확립이 가장 중요
물론 유명인이라고 해서 다 심각한 고독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이상혁 교수는 “어릴 적 애정에 결핍된 경우, 부모의 이혼 같은 정신적 충격이 있는 경우 그런 경향이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김창기 원장은 “내면적 가치보다 인기나 돈 같은 외부적 목표에 더 치중하는 사람일수록 인생을 덜 만족스럽게 느끼고 더 우울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런 고독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게 정신과 전문의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신동원 교수는 “적어도 가까운 몇몇 사람에게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인정받고 사랑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혁 교수는 “유명인들끼리 공동체를 만들어 그들끼리 교류를 갖는 것이 한가지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많은 유명인들이 그들만의 공동체를 만들어 사교활동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예계에도 나이, 취미 등에 따라 드래곤클럽(1976년생 용띠들의 모임), 심바(스노보드 동호회), 개판(개를 사랑하는 연예인의 모임) 등 다양한 모임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창기 원장은 “좋은 배우자나 친구와의 교제, 운동, 취미생활, 종교생활 등 고독감을 극복하고 예방할 수 있는 방법들은 많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행위들을 통해 삶의 가치와 의미를 만들어 나가려는 본인의 노력”이라고 말했다.
